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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영 사모의 편지(46)

기사승인 [489호] 2020.08.05  17:5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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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원 戀歌

     위 영 작가(본지논설위원)

두 번째 철원을 갔다. 사는 곳이 서서울이라 강원도를 가려면 강변북로를 다 지나서 가야 하는데 철원은 오히려 파주 쪽으로 조금 올라가서 동쪽으로 가니까 한 시간 반 정도 가면 철원에 다다른다. 더군다나 무슨 화려하고 거대한 것에 대해 기대를 하지 않는 소여가(소심한여행가)라 철원은 맞춤한 여행지이다.

검색도 하지만 가다가 여기저기 들여다보는 자유로운 여행이다. 소소한 기념관 자그마한 공원들을 살펴보는 것도 흥미롭다. 철원에 박정희 대통령 전역을 기념하는 '박정희 장군 전역 공원'이 있다. 2016년 개장을 했으니 그 공원의 의도가 가히 짐작된다. 설왕설래 끝에 지역 이름인 군탄공원이 되었으나 눈 가리고 아웅인 셈이다. 60억 원이 든 공사. 해를 향하여 도는 해바라기 공원으로 혼자 이름 붙여 봤는데 무척 넓었다. 그 넓은 곳에 사람 두엇, 지도를 보며 북쪽으로 난 길이 끝나는 곳 까지 가보는 게 계획의 하나였는데 코로나 때문에 DMZ 쪽으로는 아예 길을 막아놓고 있었다. 그래서 지난번에도 못 간 월정리역을 이번에도 가지 못했다. 아쉽기도 했지만, 다음 기약이 생긴 것도 괜찮다. 길이 막혀서 폐역된 우리나라 제일 마지막 역, 그 역 앞에서 무슨 생각이 들까, 여행은 일견 풍경을 찾아 떠나는 것 같지만 기실은 풍경이 주는 서정을 향하여 나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월정리 대신 백마고지로 향한다. 밤새네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어선지ㅡ 휴양림에서 자면서 창문을 살짝 열어놓고 잤는데 세상에 바람 소리 빗소리가 성능 좋은 스피커를 바로 귀 가까이 두고 듣는 것 같았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뒤창으로 제법 커다란 나무가 통째로 부러져 있었다ㅡ 하늘은 짙푸르고 공기는 쇄락하다. 백마공원에 들어서니 백마가 하늘을 향하여 포효?하고 있다. (사실은 조악했다. 그리고 쏟아지는 포탄 때문에 수목 한 그루 없는 산을 위에서 바라보니 백마처럼 보였다고 했는데....의미로는 썩 연결이 안된다) 공원을 거슬러 올라가는데 기이한 소리가 들려 왔다. “태극기가 바람에 펄럭입니다” 소리였다. 내가 본 중에 최고로 큰 태극기와 태극기 게양대였다 50미터. 풍력발전기 소리가 기이한, 어쩌면 공기를 살상하는 소리라면 태극기가 내는 소리는 공기를 포용하는 소리처럼 들렸다. 아주 어릴적 이불 호청을 빨래줄에 내걸었을 때의 느낌 때문인지도 모른다. 푸른 하늘에 바람의 소리를 내며 펄럭이는 태극기를 한참 바라보았다.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가 저절로 떠 올랐고 우리는 그때 오후 다섯 시 국기 하강식이면 어디에서나 가던 길 멈추고 왼쪽 가슴에 오른손을 얹고 서 있어야 했다. 연상되는 선명한 기억하나. 광주 금남로 사거리쯤이었다.

길을 가다 멈춘 채 국기 하강식을 하고 있는데 움직이지 않는 사람들 가운데서 어깨를 건들거리며 휘적휘적 걸어오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황석영 선생이었다. 이상하지, 그분이 정성 들여 쓴 ‘삼포가는 길’은 다 잊혀 별 기억이 없는데 정지된 사람들 사이에서 혼자 움직이며ㅡ그 때 그분 혼자 자유로운 영혼이었을까ㅡ 걷던 모습이 상기도 선연하다. 시간은 무서운 폭군이다. 그 잔혹한 전쟁의 흔적을 지워버린 채 푸르른 들판은 풍요로워 보였으며 가볼 수 없는 고지는 깊은 숲이 되어 고요하게 존재하고 있었다. 전쟁은 생각이 없는 시간이다. 생각이 있다면 전쟁을 할 수 없으리. 목숨보다 우선한 게 무엇인가, <1952년 10월 11일/22년간의 생애가 번개처럼 지나갔다. 부모 형제도 고향도 생각났다/살고 싶었다. 이제 겨우 22살인데 여기저기 뒹굴고 있는 보병들 ...처참한 육박전> 6.25전쟁때 이동영 중위가 쓴 글이다. 세상에, 22살 아기 아닌가, 전쟁터 속 젊은이들이 목숨을 잃으며 부모에게 참척이란 평생 감옥을 주고 떠났다.

그리고 나, 못다 핀 꽃 한 송이 같은 그들의 희생을 밟고 이렇게 평화롭게 서 있구나. 만여 명의 사상자와 푸른 숲이 백마처럼 변하게 했던 사나운 포탄의 기억을 품고 자연은 무심하게 존재한다. 남아있는 사람들은 사라져 버린 시간을 기억하며 그곳에 꽃을 심고 나무를 심는다. 기억하기 위해? 기억을 지우기 위해? 시간이 흘러 전쟁터는 관광지가 되었다. 바람의 언덕이었다. 백마고지를 바라보고 서 있는데 세찬 바람 때문에 모자가 휙 벗겨져 날아갔다. 모자를 주우려고 달려가는 순간, 그래 너희 젊은이들이 이렇게 모자 벗겨지는 것처럼 순간에 죽었겠구나. 도망가고 싶지만, 도망도 가지 못한 채 사라졌겠구나. 태극기가 바람에 펄럭이는 소리가 들리던 철원 백마고지에서 울컥했다. 철원의 너른 평야에는 이제 자라기를 다한 벼들이 가지런하게 서서 벼가 패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초록의 순수며 초록의 절정이었다. 이제 벼는 만개한 초록에서 다음 색으로 금방 넘어갈 것이다.

 

기독교헤럴드 chd623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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