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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영 사모의 편지 (44)

기사승인 [487호] 2020.07.08  17:3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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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곡습지의 목련 나무와 양주 황방리 느티나무

위 영 작가 (본지  논설위원)
 
벼르다가 양주 황방리를 갔어. 무려 살아온 세월이 850년이나 되는 나무가 오래전부터 궁금했거든. 그런 할아버지는 찾아가서 꼭 뵈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작은 소신이야. 괴상한 소신도 있군, 생각하지 말렴. 나는 책을 무척 좋아하지만, 책만 독서가 아니야. 무엇이든 자세히 바라볼 수 있다면, 바라보면서 생각할 수 있다면 훌륭한 독서지. 너와 함께 한 유럽여행은 아름답고 경이로웠지. 지금도 참 귀한 여행으로 생각하고 있어. 하지만 나무 한 그루를 자세히 보는 것도 훌륭한 여행이지. 
 
일본의 어느 유명한 궁목수가 그랬다는구나. 나무에는 두 가지 생명이 있는데 그 하나는 나무가 살아온 수령이고 다른 하나는 나무가 목재로 쓰였을 때의 내용연수라고. 일본의 법륭사 같은 고대 건축물의 노송나무는 최소 수령이 이천 년 전후라고 해. 거기다가 현재 내용연수만도 1300년이 넘는다고 하니 대단하지. 지금도 탑의 기와를 들어내고 하단의 흙을 벗겨보면 처마의 휨이 돌아오고 대패를 대보면 노송의 향기가 난다고 하니 나무의 생명이 아름답고 그윽하기도 하지. 느티나무는 아주 흔한 수종이지만 미덕이 많은 나무야. 톱니바퀴처럼 갈라진 잎들도 자세히 보면 신기해. 새순은 어여쁘고 노랗게 단풍들면 사람의 시선을 머무르게 하지. 한눈에 들어오더구나. 오래 산 나무들은 멀리서 봐도 척! 알 수가 있지. 위용이 남다르거든. 개망초 꽃과 금계국이 피어나 있는 들판을 배경으로 서있었어. 시골 동네니까 논에 모들도 심어 있었고. 850살이라고는 믿을 수 없이 반듯하고 무성해 보였어. 대개 오래 산 나무들은 거칠고 사나운 면을 지니고 있거든, 살아오면서 나무라고 고통 없었겠니? 고통의 흔적을 지니고 있어야 맞는데.... 천천히 걸어서 다른 방향에 서니 속이 커다랗게 비어있더구나, 벼락을 맞은 겐지 나무라고 해도 손색없을 굵은 가지들은 잘려져 있었고, 방향에 따라 나무 한 그루도 얼마나 달라 보이는지, 우리가 확신하고 있는 것들에 대해 의심해야 하는 경우수를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지. 나무 한 그루를 바라보는 시선에도 이리 풍경이 무수한데 우리에게 하나님 외에 무슨 천칭이 있겠니? 밀양박씨 조상들이 심었다는 이야기만 전해져 오는 걸 보면 황방리 느티나무는 그래도 평탄한 생을 살아가고 있는 거지. 문득 우리 동네 고봉산자락에 살았던 목련 나무의 삶이 생각나더구나. 
 
70년을 그곳에서 살았던 나무였어. 사진으로 보니 품이 얼마나 큰지 성인 남자 한 사람의 팔로도 어림없을 만큼 크더라. 그렇게 사는 동안 얼마나 많은 꽃을 피웠을까? 그리고 그렇게 잘라버리지 않았더라면 또 얼마나 많은 꽃을 피워냈을까? 아마 올해도 눈부시게 하얀 꽃으로 주변을 밝히는 등롱이 되어서 사람들의 마음을 그윽하게 했겠지. 사실 도심의 천연습지는 아주 귀한데 고봉산자락이 자연 습지였거든. 환경단체가 반대해도 굴착기가 밀어내고 그 와중에 목련 나무가 베어진 거지. 그 목련 나무를 장사지내며 데모를 했다고 해. 자연습지와 야트막한 산을 보존하기 위하여 투쟁한 시간이 무려 칠 년여가 흐르고 주택공사를 상대로 이긴 유일한 사건이라고 하더구나. 돈으로만 세상을 보는 시선 속에는 절대 보이지 않는 것들이 숨어있는 거야. 
 
목련나무로 솟대(이종일작)를 만들어 안곡습지에 세웠는데 작년엔가 쓰러져버렸다고 해, 사람들이 정말 슬픈 마음으로 장례까지 치렀으니까 조금은 위로가 되었을 듯도 해. 장한 삶이지. 자신은 사라졌지만 대신 습지를 살렸으니까, 혹시 ‘임의’ 라는 말을 들어봤나 모르겠다. 황무한 땅에서 가장 먼저 뿌리를 내린 풀과 가시를 통칭한 단어로 숲의 옷이라는 뜻이지. 임의가 있어서 황폐한 땅이 좋아지고 나무들이 자랄 수 있게 된대. 그뿐 아니라 숲 가장자리에서 나무들의 보호막이 되어주기도 하지. 보잘것없는 넝쿨이나 가시덤불 풀들은 숲의 어미이기도 한 거야. 800년산 느티나무도 근사하지만, 봉숭아 좀 보렴, 잠시 살지만, 꽃 따서 손가락으로 조물거려 손톱 위에 얹던 어린아이를 선명하게 보여주는 거 봐. 
 

 

기독교헤럴드 chd6235@naver.com

<저작권자 © 기독교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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