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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영 사모의 편지 (43)

기사승인 [486호] 2020.06.24  17: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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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월의 마라도

위 영 작가(본지논설위원)

마라도는 ‘홀로’와 ‘고독’이 그득한 섬이지요. 무리 지어 걷는 것보다는 혼자 서성이는, 해안가에 가만히 앉아있는 사람이 어울리는 섬. 그 사람 앞으로 푸르른 바닷물이 하얀 포말로 달려옵니다. 파도 소리 있어 오히려 적막하지요. 햇살뿐 아니라 여행길에 지친 비와 바람도 쉬어갈 것 같은 섬. 어린 왕자가 사는 별은 하도 작아서 몸만 돌리면 해와 달이 보였는데 마라도도 어린 왕자의 별처럼 일출과 일몰을 볼 수 있습니다.

마라도를 가기 위해 모슬포에서 배를 탔어요. 모슬포의 ‘못을’은 모래의 제주 방언 ‘모살’의 원음입니다. 왠지 모래보다 모살은 하얗고 투명한 느낌이 가득합니다. 그런데 구름 가득 낀 모슬포항 어디에도 모살이 보이지 않더군요. 바닷물 깊은 속으로 가라앉아 버렸는지 그저 눈 시린 청람 빛 바닷물만 찰랑이는 항구입니다.

마라도는 숲이 울창한 무인도였는데 1883년 허가를 받아 화전을 시작했었다고 해요. 이주민 중 한 사람이 달밤에 퉁소를 부는데 뱀들이 몰려와 놀란 이주민들이 뱀들을 제거하기 위해 숲에 불을 질렀습니다. 마라도는 여러 날을 불탔는데 놀란 뱀들이 바다를 헤엄쳐 제주도로 건너가버려서 뱀과 개구리가 없는 섬이 되었다고 해요. 뱀이 없으면 개구리는 더 많아야 하는데요, 하기는 나무도 어릴 때는 촘촘히 심을 필요가 있다더군요. 경쟁해야 잘 자라난다고요. 포식자가 없는 생물들의 한계로 바라본다면 주위 사람들을 어떻게 봐야 하는가의 지표도 되는가, 결국 이웃 사랑이 내 사랑인가...

배의 후미에 서서 온몸으로 바람을 맞습니다. 바다를, 바다의 색을, 바다의 품을 가슴속에 담습니다. 바다가 지닌 두려움과 공포에도 마음을 엽니다. 세찬 바람이 휙 불어오더니 나를 덥석 안습니다. 그리고 바다에 던져 버립니다. 깊고 넓은 바다에서 작은 나뭇잎처럼 떠갑니다. 가볍게 떠가는 거야. 흐르는 거야. 세상도 삶도 바다가 아니런가, 이 삶이 바다가 아니라고 그 누가 단언할 수 있으리. 가파도를 지나 마라도에 다다르는 40여 분 그렇게 세상을 잠깐 떠났습니다.
자그마하게 보이던 점이 점차 섬으로 나타납니다. 이내 바다를 향해 커다란 입을 벌리고 있는 동굴들이 여럿 보입니다. 海蝕洞窟이라고 하지요. 설마 바다가 절리 층을 혹은 약한 바위를 갉아 먹었을까요, 그보다는 바다도 쉴만한 집을 가지고 싶었겠지요. 저 망망한 바닷길을 한도 없이 오갈 때 쉬고 싶지 않겠어요? 바다는 거칠게 달려오다 어두운 굴속으로 들어가 피곤한 다리를 슬쩍 걸치겠지요. 설령 뒤이어 다가온 물들에 금방 내어줄지라도 어둡고 아늑한 동굴 안의 감미로운 휴식을 위한 집. 어쩌면 그래서 마라도는 오랫동안 禁 섬이었을지도 몰라요. 안식을 위한 고투라고나 할까. 마라도에 다가올수록 집에 대한 그리움으로 파도는 더욱 세차졌을 테니,
마라도에 올라서서 넓은 초장을 바라보는 순간 혼자가 되고 싶었어요. 저기 저 까만 돌 위에 망연히 앉아있고 싶었죠. 말들이 목을 축이기도 하고 바닷가에서 놀던 아이들이 몸을 씻던 빗물샘에서는 오래된 빗물이 전해주는 융숭한 이야기도 들어보고 싶었어요. 자그마한 키로 옹기종기 모여앉아서 하얗게 꽃을 피워내는 갯비름나물 옆에서 그들이 들던 파도 소리도 들어보고 싶었고 똘망똘망한 갯까치수염에게는 물어보고 싶었죠. 사는 게 어떠니? 바람은 견딜만 하니? 비스듬하게 땅에 누운 채 노란 풀꽃을 가득 매달고 있는 자그마한 무덤에도 말을 걸고 싶었죠. 떠난 지 오래되셨소? 거기 그곳은 어떤가요? 잘 사시오?
슬픈 전설이 어려있는 애기업개당이 있습니다. 마라도에서 모슬포가 가장 잘 보이는 곳, 해안가 한쪽 귀퉁이에 그저 다른 곳보다 돌이 둥글게 쌓여있고 가운데가 비어있으며 누구든 들어오라는 듯 한쪽 귀퉁이가 허물어져 있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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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기 못 낳는 여인이 수풀 속에서 여자아이를 발견했네/ 딸처럼 고이 길렀다네/ 그러나 그 집에 진짜 애기가 생겼다네/ 먼저 들어온 아이는 애기업개가 되었다네/ 금섬(마라도)에 들어올 수 있는 날은 망종으로부터 십오일이었다네/ 모두들 풍성한 바다 농사를 짓고 집으로 돌아가려고 하는데 파도가 세차서 떠날 수가 없었다네/ 애기업개를 놓고 가라는 꿈을 꾸었다네/ 아이구 얘야. 아기 걸렁이(기저귀)를 안 가져왔구나/ 저기 저 하얀 걸렁이를 걷어오렴/ 애기업개가 뒤돌아선 사이 배는 금섬을 떠났다네/걸렁이를 쥐고 돌아온 애기업개 떠나는 배를 향해 소리쳤네/ 나도 데려가 줍서! 제발 데려가 줍서!

마치 순수한 성품을 타고난 사람이 평생 험한 삶을 살아가도 변함없이 순전한 것처럼 마라도가 그랬습니다. 주민들의 호객행위가 이어지고 짜장면집도 즐비하며 골프 전동차가 많았어도 마라도는 자연이었습니다. 구릉 하나 없는 조그맣고 평평한 섬, 뭍사람들의 숱한 발길이 마라도를 뒤덮는다고 할지라도 바다를 달려온 바람은 사람의 자취를 순식간에 씻어내 버립니다. 마라도는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태고의 힘을 지닌 채 오늘도 존재하고 있습니다.

지나간 나날이 기억에서 사라지듯 오는 세월도 기억에서 사라지고 말 것을 <전도서 1:10-11 공동번역>

 

 

기독교헤럴드 chd623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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