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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최 선 박사의 창문 칼럼(19)

기사승인 [486호] 2020.06.24  17: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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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더 태펀 피어선의 선교사역 

최 선 박사(Ph.D., Th.D.)
smse21@hanmail.net
서울극동방송국(FM106.9MHZ) 매주 수요일 오후 4시 30분 ‘5분 칼럼’ 진행자

동방의 끝 작은 나라 한반도에 복음을 들고 입국한 선교사들이 많이 있었다. 미국, 캐나다, 호주, 영국, 스코틀랜드, 뉴질랜드 등 선진국에서 생명의 진리, 예수 그리스도를 전해 주었고 학교와 고아원, 병원, 사회복지 시설들을 우리나라에 세워주었다.

우리나라 초기 여러 선교사들 가운데, 아더 태펀 피어선(Arthur Tappan Pierson, (皮漁鮮)선교사를 소개하며, 선교의 헌신에 대한 열매에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자 한다. 그는 1837년 3월 6일 ~ 1911년 6월 3일까지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지구촌 곳곳을 다니며 생명의 말씀을 전했다.

피어선 박사는 미국의 장로교 목회자이자, 성경교사 양성가이며, 선교운동을 활력 있게 펼쳤던 예수님의 참 제자였다. 그는 ‘피어선성경기념학원’(현, 평택대학교)을 세우는데 중요한 기반을 놓았던 인물이다. 피어선 선교사는 우리나라가 복음을 받아들이던 근대 복음주의 선교운동 이론가로 한국교회에 많이 알려져 있다.

피어선 박사는 일만 삼천 개 이상의 설교문과 연설문 등을 집필하였다. 심지어 60권 이상의 책을 집필할 정도로 활발한 작가이기도 했다. 우리나라 초대교회 때에는 선교사들에게 적지 않은 지성과 영성으로 큰 영향력을 미쳤던 기독교 지식인 중에 중요한 인물이기도 하다.

특히, 한국교회가 기억하는 언더우드와 북장로교 해외 선교부 총무이자 프린스턴 신학교의 교회사가 로버트 엘리엇 스피어(R.E.Speer) 교수, 이슬람 선교의 개척자 사무엘 M. 즈웨머(Samuel Zwemer), 기독교청년회(YMCA) 운동과 에큐메니컬 운동의 지도자로 후에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존 모트(John R. Mott), 한국의 선교사였던 제임스 게일(J. S. Gale)박사 등에게 크고 작은 선교적 지원으로 피어선 박사는 그들과 선교 동역을 하였다.

우리나라 수많은 선교사와 학자들에게 영향을 주었고, 1887년 새문안교회가 시작된 해에 언더우드는 피어선에게 성령의 능력으로 예배에 많은 사람이 참여하고 있다고 편지를 보내며 깊은 교제를 시작하였다.

언더우드는 피어선이 편집장으로 있었던 세계선교평론의 조선 거주 편집 통신원으로 활동하다가 후에 ‘피어선성경기념학원’의 초대 이사장으로서 학교설립을 주도하였고 초대 원장을 지내기도 하였다.

피어선 선교사는 절친한 친구인 무디와 함께 미국의 복음주의 운동을 주도하며 1886년 미국 노스필드에서 학생자원운동(SVM) 단체를 창설하여 셔우드 에디(Sherwood Eddy), 존 모트(John R. Mott), 헨리 윈터스 루스(Henry Winters Luce), 타임지 잡지 창설자 Henry R. Luce의 아버지와 같은 수많은 대학 청년들에게 선교의 비전을 심어 주었다. 미국의 학생들은 여기에 도전을 받아 조선과 청나라, 동남아시아, 중앙아시아에 십자가 복음을 들고 머나먼 이방인의 나라들까지 선교사로 떠나갔다.

피어선 선교사는 매우 열악한 여건에서도 성경을 공부하는 조선인들의 모습에 크게 감동하여서 성경학교 설립을 약속하였는데 병세가 악화되어 1911년 1월 조선을 떠나 일본, 미국 LA를 거쳐 뉴욕으로 돌아간 후 1911년 6월 3일 74세로 이 땅에서의 복음 전파 사명을 다하시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 영생이 있는 천국으로 가셨다. 그가 남긴 마지막 메시지는 “조선에 성경학교를 세우라”였다.

피어선 선교사의 유족과 친구들, 후원자들이 피어선 박사의 유언을 따라 조선에 초교파적 성경학교를 설립한 것이 1912년 서울 서대문구 협성신학교 내에서 시작된 ‘피어선기념성경학원’이다. 이 성경학원을 전신으로 하여 1980년 조기흥 전 총장에 의해 대학설립 인가를 받았고 1981년 평택으로 학교를 옮겨 피어선성서신학교로 개교하였다. 1990년 12월 4년제 대학으로 승격하여 피어선대학으로 개명하였으며, 1996년에 근거지명을 따라 평택대학교로 재개명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동방의 작은 나라 조선의 어두운 영적 어려운 환경에서도 하나님의 진리를 전하기 위해 지병을 안고 있으면서도 우리나라에 복음을 들고 찾아온 피어선 박사(선교사)의 충성스러운 예수의 제자 정신을 깊이 생각한다.

한국교회 성도들은 하나님과 피어선 선교사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이다. 우리는 모두 힘들고 어려운 코로나19 사태의 긴 터널을 지나고 있지만, 아더 태펀 피어선 박사가 십자가의 길로 걸어갔던 발자취를 반추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반드시 승리하는 신앙의 길로 나아가자.

최 선 박사(Ph.D., Th.D.) smse21@hanmail.net

<저작권자 © 기독교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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