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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영 사모의 편지

기사승인 [482호] 2020.05.20  17: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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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물

위 영 작가(본지논설위원)
선물은 ‘시간’을 지니고 있다. 받은 물건보다 선물 준 이의 ‘시간’을 선물이라고 생각해도 괜찮다. 작은 선물일수록 더 그러하다. 비싼 선물에는  돈이 많이 들어가 있어 시간이 들어 있을 틈이 별로 없다. 받은 사람도 비쌈에 혹해서 시간 같은 것은 생각하지도 못한다. 소박하지만 정성들인 선물일수록 거기 상대방의 시간이 포옥 들어가 있다는 것,
 생각해보라. 마음 가는 이에게 마음을 보이고픈 선물을 하려면 뭐가 필요할까, 생각이다. 생각하는데 필수불가결한 시간이 많이 들어간다. 무엇인가를 정했다 하더라도 마음에 맞는 것을 고르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오래전 미국에서 보내온 자그마한 소포를 받았다. 열어보니 내가 좋아하는 명화들로 만들어진 달력과 종이마다  예쁜 그림이 가득 찬 노트였다. ‘노트의 표지 그림, 책을 읽고 있는 그림 속 여인이 나와 흡사해서......’ 참한 글씨체로 적혀 있는 글귀도 시간과 함께 잊히지 않는 멋진 선물이었다. 무엇인가를 쓰기에는 너무 예뻐서 아주 오랫동안 바라만 보던 노트였다.

 그러니까 내게 그런 선물을 보내기 전 그녀는 자주 나를 생각했을 것이다. 뭐가 좋을까....그러다가 노트를 떠 올렸을 것이고 다운타운으로 노트를 사러 갔을 것이다. 거기 가서도 아마 내내 나를 생각하며 여기저기 물건을 보며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몇 마디 글을 쓸 때도 수많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예쁘게 포장을 해서 소포를 보내러 우체국을 갔을 것이다.  먼 미국 땅에서  나를 생각한 그녀, 그러니까 선물은 시간이고말고. 
 P는 늦은 나이로 미국에서 공부를 하고 있던 유학생이었고 지금은 돌아와 대학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매달 한 번씩 북클럽에서 우린 만나는데 지난 달 일 때문에 내가 결석을 했다. 우린 서로 보고 싶다고 톡을 했다. 맞아, 우리 보자...같이 점심을 먹기로 약속을 하고 수업 끝나는 시간에 맞춰 내가 그녀의 학교로 갔다.

 장미의 계절이 시작되었다. 거품 속에서 아프로디테가 태어날 때 거기 함께 했다는 장미. 이즈음 덩굴장미가 한창이다. 수많은 색깔의 장미가 있지만 가장 장미다운 것은 진초록에 빨간 장미이다. 봄의 막장과  여름의 서장을 지독히도 선명하게 알려주는 장미. 특히 덩굴장미의 아름다움은 유별나게 어느 가지하나 길게 뻗어나서 거기 드문드문 장미 피어나 있는 것이다.
아마도 아프로디테를 더욱 아름답게 보이게 했을 거품처럼 장미를 아름답게 해주는 여백이 기다란 줄기 안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주차를 한 담장에도 넝쿨장미가  피어나 있었는데 그중의 몇 가지가 길게 솟아나 나에게 손짓했다. 한참을 바라보았다. 그런 해찰 뒤에 만난 그녀는 초록 빨강의 덩굴장미 같은 젊은 아이들과 함께 있었다. 그러니 그녀도 함께 싱그러워 보였다. 우리는 산이 마치 병풍처럼 둘러진 학교 뒤쪽의 식당으로 갔다. 초하의 숲 향기가 푸욱 끼쳐왔다. 그다지 덥지 않는 그러나 여름의 기운을 잔뜩 담은 바람... 천천히 식사를 하며 서로에게만 할 수 있는 극히 내밀한 이야기들을 했다. 힘든데...너무 힘들어서 죽겠는데 결국 그런 일들이 깊은 성찰을 하게 하더라고. 그렇지, 무슨 일이 생기면 우선 나를 봐야해, 일을 보거나 타인을 봐서는 안 돼. 새로운 일들 속에서 또 다른 내가 있기도 해. 내가 알지 못했던 새로운 내가, 하나님 아버지 때문에 결국 당당할 수 있는 것 같아. 힘든 부분을 그분께 맡기고 나면 그만큼 쉬워지거든, 오해를 받을 경우 일희일비할 일이 아니더라. 남이 무어라 하던 하나님 앞에서 잘못이 없으면 그게 다 풀리더라고. 사람의 말은 그렇게 오래가질 않아. 미국에서 나를 가르치시던 교수님은 언제나 따뜻하고 다정하셨어. 그게 인격이 아닐까,  우리도 그렇게 누구에게나 다정하고 따뜻하면 좋을 텐데....그러니까 일상의 대화가 아닌 마음속 풍경을 나누는 대화.
돌아오다가 다시 그 장미들을 만났다. 생각해보니 이런 아름다운 선물이 또 어디 있겠는가, 
살짝 손을 대었더니 아까 보이지 않던 가시가 보였다.
<장미 같이 아름다운 꽃에/가시가 있다고 생각하지 말고/이토록 가시 많은 나무에/장미 같이 아름다운 꽃이 피었다고 생각하라> 정호승의 시 일부다.
 

기독교헤럴드 chd6235@naver.com

<저작권자 © 기독교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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