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메니우스와 형제연협교회의 신앙
정일웅 교수(한국코메니우스연구소 소장본지 논설위원 |
한국교회는 그간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받는 루터의 칭의(稱義)의 복음을 전하는 일에 충실하였다. 그러나 말씀(믿음)대로 순종하는 신앙(행동)실천이 따르지 않아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 모습으로 비판된다. 즉 믿음대로 행하지 않음이 문제인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 해답으로 최근의 한 신학자(톰 라이트)는 율법을 행해야만 구원받는다는 ‘바울의 새 관점’이란 새로운 구원론을 제시하였다. 역시 라이트의 지적은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받는다는 믿음에 관한 강조가 초래하는 문제를 잘 지적해 준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염려스러운 것은 역시 율법의 행위가 지나치게 강조되면, 믿음에 회의가 일어나며, 선행의 보상에 대한 질문이 제기될 수 있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기독교의 구원신앙은 믿음과 행위의 이분법적인 관계가 아니라, 언약에 뿌리를 둔 소망과 연결되어야 하는 삼각관계로 이해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언약에 근거한 소망의 필요성을 생각하게 된다.
형제연합교회가 보여준 신앙의 특성 4가지는 이상적인 신앙공동체가 지향해야 할 방향이었다. 그것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굳게 믿는 신앙과 그 말씀대로 행동하는 믿음의 순종과 사랑의 훈육과 교회의 자유에 관한 것들이다. 그 가운데서 특히 ‘교회의 훈육(訓育)’은 신앙공동체가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며, 성경 말씀대로 살도록 사랑으로 돌보고 삶의 책임을 일깨우는 신앙훈련법이었다. 그것은 성령의 은혜 아래서,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형제를 돌보며, 교제하며, 진리 안에서 자유 한 자의 삶이 가능하도록 돕는 목회방법이었다. 이것은 죄고백과 중생의 확신과 그리스도의 따름인 경건의 실천 구도에 따라, 반응하며 사는 성도들 만들어가는 방법이며, 경건한 신앙공동체를 이루게 하는 경건 훈련의 방법이다. 그리고 형제연합교회는 교회구성 자체가 로마 가톨릭교회의 엄격한 상하 수직관계(성직자와 평신도의 관계)를 극복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동등한 수평관계의 형제공동체로서, 만인 사제의 원리가 실현된 공동체였다. 그러나 공동체의 운영과 지도를 위하여 감독직, 목사직과 장로직, 집사 직분들은 그대로 수용하였다. 다만 그 직분은 형제들 위에서 군림하고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성숙한 인격적인 신앙 지도력으로 서로를 존중하고, 사랑하는 관계에서 하나님의 백성을 돌보며 섬기는 직분이었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내적으로 교회의 공동체성(하나 됨)과 외적으로 공공성(신뢰성)을 상실한 모습이 된 것은 목회철학의 부재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형제연합교회는 이 시대에 한국교회의 지도자들이 어떤 그리스도의 공동체(교회)를 만들어야 할지를 보여주는 목회철학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유럽의 교회역사는 기존의 교회(가톨릭)가 성경의 본질을 떠나, 지나치게 제도화되고, 정치화되어 교권 남용의 문제들이 만연할 때, 그리고 기독교 경건(영성)의 참된 본질을 상실하게 될 때, 교회의 개혁 운동은 필연적으로 일어나게 되었던 사실을 잘 보여준다. 생각하면, 형제연합교회는 15세기에 보헤미아에서 얀 후스가 낳은 교회개혁 운동의 실체였다. 16세기에 루터의 종교개혁도 같은 맥락에 있었던 일이다. 그리고 17세기 후반 18세기에 유럽에서 일어난 경건주의운동은 역시 프로테스탄트교회 자체가 서로 분리하여 경건(신앙)의 본질을 외면한 채, 지식적인 교리를 인류구원 진리의 객관적인 것으로만 고집할 때, 영국에서의 퓨리턴(청교도)과 화란의 라바디와 독일의 스페너와 프랑케와 친첸도르프 등을 통하여 새로운 경건 운동이 일어나게 되었다.
기독교헤럴드 chd6235@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