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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동민 박사가 본 영화 기생충

기사승인 [474호] 2020.02.26  18: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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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님이 맹인을 돌본 이야기에서 의미 찾아

■ 연극적 감수성

영화 <기생충>이 수상 이후 여러 논평들을 들어보아도 현실 변화를 위한 진지한 논의는 찾아보기 어렵다.

미국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의 “연극적 감수성”이라는 개념이 있다. 허구 세계의 불쌍한 자들에게는 애정과 동정심을 가지면서도, 막상 현실 속에서 만나는 그런 사람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심리를 일컫는 말이다. 예컨대 연극을 보면서 주인공의 불운에 대하여 눈물을 흘리는 귀부인이 자신의 마부는 추위에 떨든 말든 바깥에서 기다리라고 하는 감수성이다.

■ 거대한 속임수

영화 외의 다른 분야에서도 비슷하다. 한 학자가 세계 문제에 대한 획기적인 이론과 해결책을 내놓으면, 수십 명의 명망 있는 학자들이 달려들어 각자 자기 입장에서 분석하고 칭찬하고 비교하고 비평하다가, 너덜너덜해지면 폐기하는 것이 학계의 관행이다.

■ 장동민 교수가 소개한 도서.

책은 사람을 계몽시키는데, 계몽시키려면 사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아야 하고, 객관적으로 사태를 보는 사람은 무모하게 뛰어들지 않는다. 책은 문제를 제기하고 해결책을 제시하는데, 그 해결책을 실행할 동력을 제공하지는 못한다.

■ 이제는 기독교인들이 대답해야 할 때

성경의 예를 한 가지 들어보자. 예수님과 제자들이 길을 걷다가 날 때부터 앞을 못 보는 맹인을 만났다. 제자들이 물었다. “선생님, 이 사람이 눈먼 사람으로 태어난 것이 누구의 죄 때문입니까? 이 사람의 죄입니까, 부모의 죄입니까?”(요9:2). 맹인의 입장에서는 대단히 폭력적으로 들렸을 것이다. 맹인도 엄연히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인데, 마치 그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그의 상태에 대하여, 그의 죄에 대하여, 그의 부모의 죄에 대하여 논하고 있다. 안 그래도 고통받는 사람에게 종교적 죄책감까지 얹어주었다.

영화 <기생충>의 중요한 상징 가운데 하나인 ‘냄새’ 문제를 생각해 보자. 냄새에 관한 신(scene)을 보면서 두 가지 생각이 교차하였다. ‘이 감독 참 날카롭네. 마치 문제를 핀셋으로 콕 집어 올리는 것 같구먼. 그런데 좀 얄밉네. 냄새나는 사람들은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봉 감독은 객관적인 사실을 말했을 뿐이지만, 이제 냄새는 ‘구별 짓기’(부르디외)의 한 기준으로 우리의 머릿속에 영구히 각인되어 버렸다.

■ 영화 ‘기생충’ 스틸컷.

다시 요한복음의 맹인 이야기로 돌아가자. 예수님은 이 맹인이 들었을 것을 염려하셨는지 급하게 대답하셨다. “이 사람이 죄를 지은 것도 아니요, 그의 부모가 죄를 지은 것도 아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들을 그에게서 드러내시려는 것이다”(요9:3). 예수님은 죄와 질병의 관계에 대한 대답을 한 아름 가지고 계셨을 것이다. 그러나 죄와 질병에 관한 이론을 설명하기에 앞서 예수님은 이 맹인에 대해 긍휼한 마음을 가지셨다. 제자들은 그를 쓸모없는 잉여 인간으로 대하였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이 그를 통하여 일하실 소중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보았다.

이게 기독교다. <기생충>은 질문을 던짐으로 사명을 다하였고, 이제 우리 기독교인들이 대답해야 할 차례다. <기윤실 제공>

장동민 박사(백석대 기독교학부) dsglory3604@nate.com

<저작권자 © 기독교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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