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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영 사모의 편지 (30)

기사승인 [473호] 2020.02.19  16:5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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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영 작가 (본지논설위원)

월요일 목요일은 울엄마 학교 가시는 날이다. 허리는 할미꽃처럼 굽으시고 다리는 오자 형으로 휠만큼 휘셔서 나보다 더 크시던 키 나보다 작아지셨지만 그래도 벚꽃처럼 환한 웃음 지으시며 나가신다. 주황빛 아주 밝은 쟈켓에 내가 하려고 샀던 브로우치가 맘에 안들어서~ 엄마 하셔요 하니, ‘아이고 이라고 이삔 것을 내가 달아야.’ 엄청 좋아하시며 브로우치...달고 나가신다. 연분홍 실크 스카프 목에 걸치시고 담휘가 버린다는 초록색 도톰한 면 후드쟈켓으로 어릴 때 나 깐딴꾸 만들어준 실력으로 만든 이 세상 단 하나뿐인 가방 드셨다. '이것이 가벼웅께 제일 좋아야....색깔도 쌕쌕하고....'가방 안을 들여다보면 규서가 준 아주 예쁜 천 필통에 골고루 펜도 넣으시고 노트도 담고 일본어 책에 프린트 물에 손수건 휴지에 아주 성실한 학생 가방이다. 마지막으로 모자 쓰고 휠체어에 가방 걸고 능숙하게 운전하시며 덕양구 노인복지센터에 가신다. 차로 가면서 재보니 5KM터가 조금 못되는 먼 거린데 여기저기 세상 바라보시며 학교로 공부하러 가신다. 머리도 곱게 빚으시고 분도 살짝 바르시고 손 탄다고 장갑도 끼시고....엄마 뒷모습을 보다가..... 언제까질까, 문득 가슴이 싸해졌다. 겨울에는 추워서 못가실 때다 있었는데 이즈음 봄이 되니 아주 즐겁게 오가신다. 학교를 다녀오셔선지 소녀처럼 발그레한 볼로 내방에 들어서신다. 보통 때엔 주로 나를 부르시지 내 방으로 오시지는 않는다.

“아야, 내가 오늘 생각해봉께....세상에 을마나 좋고 감사하거시냐. 학교 문턱에도 못 가본 난디, 느가부지가 나를 사실로 무시한 것도 학교 탓 아니겄냐. 느가부지는 일본으로 유학가서 중학교까지 마치고 그래도 읍장까지 하신 분인디 나는 개우 언문이나 깨쳤응께 댈 수도 없이 무식한거제, 근디 우리 학교 가보믄 다들 공부를 많이 한사람들 가터야. 다들 멋쟁이고, 성생님한테 질문도 막 하고, 근디 나는 질문은 절대 못하제, 그냥 가만히 듣제, 그래도 새로운 한문이 나오믄 첨에는 암것두 몰것든디 인자 제법 먼말인지 알것당께, 하도 들어쌍게...동사가 머신줄 알것드란 말이다. 근디 오늘 같은 반 으뜬사람이 나한테 글드라. 일제때 공부를 엄청 나게 많이 하셨나 보다고....그래 내가 그랬서야. 학교를 그라고 가고 싶었는디 울아부지가 못 가게 해서 학교 문턱도 못가고 야학에서 글자 배운 게 다라고...놀라드랑께....왜 안그라것냐 나처럼 무식한 늙은이가 나이는 젤로 많아각고 이라고 학교를 다닝께 놀랄만하제, 아마 내가 젤로 나이가 많을 거라고 글드라....” “맞어, 엄마 그것 엄청 자랑스러운 일이랑께. 누가 엄마처럼 나이 드셔 가지고 공부하러 다니시겄서. 그것도 언문이나 겨우 깨친 냥반이... 근데 선생님 설명이 제법 들어와?”

“인자 삼년 아니냐, 내가 학교를 다닌 것이. 내가 오늘도 옴시롱 곰곰 생각해봉께 세상에 이 전동차가 나한테는 비행기보다 더 존 것이어야, 비행기가 아무리 좋다고 해도 이라고 낫낫하것냐? 근디 이 전동차는 나를 이라고 사방데로 데려다 주니 이것이 없으믄 내가 으디를 다니것냐. 큰오빠한티 가서 살 생각만 했제, 니한테 와서 살 생각은 꿈에도 안했는디 이라고 와서 춘지 더운지 모르고 해준 밥에 깨끗이 빤 옷에 따땃한 물로 날마다 목욕하고 옷 갈아입고. 보성에서도 목욕은 자주 햇제만 물 따로 데워야 하고,,귀찮아서 목욕탕 가려면 읍내까지 나가야 했는디,. 거그다가 내가 그라고 다니고 싶어 했든 학교까지 이라고 다니다 봉게....오늘은 을마나 하나님께 감사한지....아이고 이 부족한거슬 이라고 사랑해주시다니.... 차타고 오다가 멈춰서각고 하나님께 한참을 기도했다. 니한테 와서 안살았으믄 내가 으디서 이라고 전동차 타고 핵교를 댕기겄냐?. 니가 막내기도 해서 그랬겠제만 니를 참말로 느가부지랑 이뻬했제, 니는 열 살이 넘어서도 품에 폭 앵겟당께, 니 큰오빠는 세 살 됭께 뻣뻣해서 안앵기등마. 내가 오늘 생각해봉께 니는 니 그라고 이뻬하고 젖미겨 키운 것, 인자 나한테 다 갚았다. 갚고도 남제,”

전동휠체어를 치우러 나가보니 연분홍색 모자가 살풋 얹혀있다. 지지난주에 엄마를 잃은 지인의 카톡에 떠있던 말 ‘이젠 불러도 대답 없는 엄마.....’오늘 엄마 불러서 대답할 이 계시니.....이 얼마나 그윽한 봄날인가. 며칠 전 피기 시작하더니 눈부시게 환해지더니 금방 작은 바람에 져 내리는 저 벚꽃. 꽃 같은 생명 꽃 같은 인생 아닌가....

** 엄마 여든 여덟 살 때 글이다. 그리고 엄마는 이제 아흔 다섯이 되셨다. 그동안 두 번 넘어지셨고 뼈를 다치셨고 그 때문에도 점점 쇠약해지셨다. 이제는 방안에서 겨우 화장실 정도 지팡이 짚고 다니신다. 엄마에게는 여든 여덟 살도 눈부신 봄날이었다. **

 

기독교헤럴드 chd623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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