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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영 사모의 편지 (연재)

기사승인 [465호] 2019.12.05  16:0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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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아, 이 또한 유쾌한 일이 아니겠는가!

            위 영 작가(본지 논설위원)

금성탄의 ‘유쾌한 한 때’ 33절은 실제 유쾌한 일에 대한 이야기라기보다는 일상적인 일을 바라보는 시각에 대한 이야기라고 해야 맞습니다.
 해가 저물어 가는데, 또 한 살이 겨울날 춘천 강가에 물안개 피어나듯 성큼 거리며 다가오는데 무에 좋겠습니까만 또 어떻습니까. 세상을 노랗게 질리게 하던 미세먼지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바람 약간 부는 서늘한 날은 겨울 날씨 다우니, 아아. 이 또한 유쾌한 일 아니겠습니까, 오랜만에 구두를 신고 지하철을 탑니다. 하이힐 굽이 여성의 콧대 내지 자존심이라는 젊은 아이들의 의미심장한 내역까지는 다다르지 못한다 할지라도 여포(여자를 포기한)구두를 안신은 것만으로도 유쾌하더군요. 가난한 사람에게 작은 기쁨이 잦듯이 늙음은 사소한 일들에 고여 있는 즐거움을 발견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미미한 일들이 의미 있어지고 이전과는 다른 각도에서 예쁘고 사랑스러운 존재들이 많아지니 혹 늙음은 예술성이 충만해지는 시기일 것 같기도 합니다. 초현실주의를 나타내는 데페이즈망, 전위법은 전혀 이질적인 것들의 공존을 의미하는데, 가령 르네마그리트의 공중에 떠있는 커다란 바위 같은 것 말이죠. 젊은 아이들에게야 하이힐은 그냥 신발이겠지만 나이든 사람에게는 신발 이상의 어떤 것이 되기도 하니 일종의 전위 아닌가요. 그러니 이 또한 유쾌한 일 아니겠습니까, 아침시간이라 지하철 자리가 넉넉하더군요. 편안히 앉아 핸드백에 든 책을 꺼내는 기분이 삼삼합니다. 강남까지 가는 50여분의 시간이 즐겁고 편안해서 <눈 깜빡할 새>입니다. 눈 깜빡할 새는 지루함이 전혀 없는 아주 사랑스러운 새죠. 부디 이런 새를 자주 느끼고 볼 수 있기를 희망해봅니다. 그러나 너무 자주 만나게 되면 시간이란 중요한 분께서 손에 담은 물처럼 되기도 할 터이니 허겁지겁 좋아할 새는 아닐 수도 있어요. 
가까운 사람들과의 송년횝니다. 오늘 만나는 사람들을 금,성,탄,으로 부르도록 합시다. 유쾌한 사람들이니 이니셜로는 훌륭한 듯합니다.
 지하철에서 나와 금을 만나 차를 탑니다. 차안에 내 이름이 떡 적혀있습니다. 전화였죠. 내가 흥미로워 하니. 금이 그럽니다. 기계를 잘못 만지긴 하지만 아이폰과 BMW는 아주 맘에 든다구요. 운전석 앞 유리창에 내비도 그려진다고 하더군요. 강남에서 핫한 식당을 갑니다. 분위기도 좋지만 맛두 좋다더니 게살 스프로 시작되는 코스 요리가 아주 맛났습니다. 쟈스민 차도 좋았는데 차 맛보다 유리병에서 피어나는 차 꽃이 더 멋졌습니다. 이게 쟈스민이예요? 쟈스민이 이렇게 크나? 그런 종류가 있나 봐요. 설왕설래. 식사 중에 성언니의 이야기가 인상 깊습니다. 정치란 게 고약한데 중국에서 엄청나게 티벳으로 사람들을 보내 애기를 많이 낳으라고 한다는군, 근데 티벳 사람들은 애기를 아주 잘 나는데 중국 사람들은 티벳에 살면서 애기를 못 낳는다는 거야. 감자도 어느 고지 이상 가면 열매가 들질 않는다고 하죠. 아 음식 맛이 더 좋아지던걸요. 뭔가 사람의 힘으로 안 되는 무엇을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잖아요. 더불어 겸허해지잖아요. 금이 말합니다. 우연히 달라이 라마를 봤다고요. 티벳 갔을 때. 티베트사람들은 고개를 못 든대요. 고개 숙이노라, 자기는 특유의 포즈대로 손을 약간 흔들었는데....창문을 열더라는, 아 진짜?
 식사를 느긋하게 하고 나와서 옥션을 갔습니다. 눈이 휘둥그레지는 작품들, 저는 다 좋아보였는데 탄은 사고 싶은 것이 없다고 하더군요. 화가인 그녀의 단호함은 아무에게나 없는 기개로 여겨졌습니다. 그곳을 나와서 에르메스 매장 아래에 있는 비밀스런 공간, 에르메스 박물관을 갔는데 다수 보다는 소수를 위한, 푸르른 형광 빛과 어울리던 블루의 세상이었어요. 물빛....물속 나무들....물에 잠긴.. 천정으로 솟은 아주 길다란...그러나 착시인....거기에 반전도 있는....자본주의의 무심함과 차가움이 저절로 생각나는 공간이었다고나 할까, 
 다섯 시간을 같이 있었는데 다섯 시간이 눈 깜박할 새였어요. 어찌나 웃었던지 나중에는 얼굴이 조금 땅겼어요. 쓸쓸한 세모에 따뜻한 사람들과의 만남, 가는 해에게 유쾌한 바이! 새로운 해 어서 오시오. 허그! 이 또한 유쾌한 일 아니겠습니까?

 

 

 

기독교헤럴드 chd6235@naver.com

<저작권자 © 기독교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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