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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영 사모의 "편지" (연재)

기사승인 [462호] 2019.10.30  17: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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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과 한 알

                     위 영 작가

 내가 기억하는 어릴 때 사과는 두 종류였어. 가을에는 홍옥 겨울엔 국광이었지. 자그마하고 빨갛고 어여쁜 홍옥은 참 가을스런(?) 과일이야. ‘사과 한 알’ 이라는 사랑스러운 문장이 지극히 어울리는 과일. 가끔 홍옥 한 알이 주어지면 바로 먹지 않았어. 오져서, 좋아서, 흐뭇해서, 아마도 그 기쁨을 오래 누리고 싶었던 게지, 사랑스레 들고 다니던 사과를 옷에다 뽀드득 문지르면 빨간 구슬처럼 사과는 반짝거렸어. 그렇게 들고 다니던 사과를 어느 순간 한 입 팍 깨물어 먹으면 붉은 껍질 속의 우윳빛 속살, 그 속살이 지닌 달콤한 과즙과 새콤한 향기가 입안으로 가득 차오르면.....
 지금은 사과를 보자마자 칼부터 들이밀고 말지. 껍질 안 깍은 사과를 감히 먹을 생각도 못하나 (하긴 껍질에 영양이 많으니, 친환경이니 해서, 껍질 채 먹는 사과가 출하되니 꼭 맞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칼로 예쁘게 잘라진 사과의 맛과 한입 가득 베어 문 사과 맛은 다르고말고. 겨울이 되면 푸르뎅뎅한 겨울날씨처럼 때깔 차가운 국광이 나타났지. 추워서 살짝 얼음기가 있는 듯 한 빛깔, 홍옥과는 달리 속도 더 누랬지. 먹을 것 귀한 시절에 어디 맛없는 것 있으랴만, 차갑고 신선했어. 
 세상이 달라지기 시작하니까 사과들도 덩달아 종류가 많아져서 이젠 사과의 이름을 다 알지도 못해. 크기는 갈수록 커지고 단맛은 일취월장 증가되어 홍옥에서 풍기던 그 아담한 자태와 새콤한 사과향기는 사라져 가고 거의 없어. 꼭 맞는 추론은 아니더라도 증가하는 단맛이나 크기만큼 사라지는 것도 있을 거라는 게 내 지론이야. 그림자 론이라고나 할까, 그림자는 실체가 있어야만 생기는 존재야. 그림자 없는 실체는 없지. 그림자가 안 보인다고 하여 그림자가 없는 것은 아니지. 빛이 달라지면 금방 나타나거든, 그림자는 마치 길의 갈래처럼 매우 철학적인 존재거든. 그림자를 기억해야 해 우리 모두.
 사과 특유의 새콤한 향기와 맛을 점점 제거해서 그저 입맛에 맞는 달콤한 맛만 남기게 된다면 그것이 정녕 사과일까, 요즈음 단맛 나는 사과를 잘라보면 그 안에 노오랗게 ‘사과의 꿀’이 눈에 보이지. 어떤 사람은 그것을 파인애플이라고 부르기도 하던데, 단맛 내는 사과의 꿀- 밀 증상은 원래 사과의 생리장해로 일종의 병이었다고 해. 그래서 밀에 病이 붙어 밀병이 되었다고, 온도가 높거나 아침과 저녁의 온도차이가 높을 때 생기는 증상인데 이 밀병이 사과 안에 생기면 저장할 때 이 부분부터 갈색으로 변화되고 나중에는 썩어 들어가게 된다는 것이지. 그러니 썩기 전에 빨리 먹어야하는 단점을 지니게 된 거지, 참으로 공평하지 않는가, 사과들은 단맛을 내는 대신, 그 달콤함에 몸을 적시는 대신, 때 이른 죽음을 택하게 되는 것이지.
 가만히 사과의 밀병을 생각해보니 우리가 너무 그들을 피곤하게 하지 않는가, 맛있게, 멋있게, 크게 탐스럽게, 요구하여 그들 안간힘 쓰다가 저렇게 보이지 않는 곳부터 썩어 들어가는 것 아닌가, 꽃들도 자살 욕구가 있다는 글을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어. 지나치게 힘들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자신이 피어날 알맞은 시간보다 훨씬 더 일찍 피어나버린대....
 그런데 혹시, 우리 아이들을 저 사과처럼 키우고 있질 않는가, 실력 있어야 된단다. 그래야 살아남아. 무엇보다 우선한 것이 공부야, 공부를 못하면 안 돼, 안 돼 안 돼,  친절하고 따스한 행동은 하나도 가르치지 않으면서 오직 공부와 재능만 가르치고 있지 않은가, 배려는 좀 이따 배워도 돼, 우선 잘해야 해, 우선순위가 인생살이에선 아주 중요하단다. 무시무시하고 화려한 언어의 채찍을 우리 아이들을 향하여 쉼 없이 날리고 있지 않은가, 혹시 그래서 그리하여 우리 아이들, 겉은 그럴싸한데 깊고 깊은 속에 아무도 모르게 밀병 들어가는 것 아닌가......
 눈부시게 아름다운 가을이네. 이 가을도 금방 사라지겠지. 느티나무는 노랗게 물들어가고 복자기 나무는 아주 빨갛게 물들어가고 있어. 나는 그대가, 어린 아이를 키우고 있는 그대가, 수많은 돈 들여서 학원만 뺑뺑이 돌리지 말고 이렇게 아름다운 가을날  낙엽 휘날리는 거리를 아이와 손잡고 걸었으면 좋겠어. 그리고 아이에게 말해 주는 거야. 가을에 대해서. 원래 나무 이파리에는 초록색 노랑색 빨강색이 다 존재하고 있는데 그것이 계절에 따라 이렇게 다른 색으로 나타나는 거란다. 지금 보이지는 않지만 저 나뭇잎들은 겨울을 나기 위해 자기 몸의 영양분을 가지나 몸통으로 보내고 있을 거야. 나무는 추운 겨울을 잘 지내기 위해서 자기 몸의 수분을 다 비워낸단다.
 아이와 함께 가을 공원을 걷는 그대의 모습은 가을처럼 환할 것이야. 

 

 

 

기독교헤럴드 chd623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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