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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를 위해서 우리를 세웠나니!

기사승인 [455호] 2019.09.05  17:2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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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옥 목사  (간석제일교회 원로)

중국에서 지난 2011년에 있었던 일로써 어떤 여성운전사가 버스를 운전하고 산 고개를 오르고 있는데, 버스에 타고 있던 승객 중 불량배 두 사람이 여성운전사에게 달려들어 성희롱을 했다.

버스에 타고 있던 승객들은 모두 모른척하고 있었는데, 그중 한 중년남자가 그들을 만류하다가 오히려 심하게 얻어맞게 되었고, 당당해진 불량배들은 급기야 산 정상에서 버스를 세워놓고, 여성운전사를 숲속으로 끓고 가 무슨 짓을 하고는 한참 뒤에야 그 여성운전사를 앞세우고 돌아왔다.

그런데 차에 오른 여성운전사가 불량배들을 제지했던 그 용기 있던 중년남자에게 큰 소리를 치면서 차에서 빨리 내리라고 호통을 쳤다.

그 용기 있는 중년남자는 황당해 하면서“그래도 나는 당신을 보호하고 도와주려 했는데 이런 산중 고개언덕에서 내리라니 어떻게 된 것입니까? 라고 항의했지만, 여성운전사는 더욱 소리를 크게 지르며“승객 여러분! 이 사람이 내리지 않으면 절대 출발 않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래도 그 중년남자가 버스에서 내리지 않고 버티자 조급해진 승객들이 그를 강제로 끌어 내리고 그의 짐도 차 밖으로 던져 버렸다.

그 중년남자는 길바닥에 내동댕이 처서 쓰려졌고, 버스는 출발했는데, 그 여자운전사는 버스를 몰고 내리막길 급커브에서 악세레터를 세게 밟으며 내 달리다가 그대로 낭떠러지로 추락하고 말았다.

그런데 아까 차 밖으로 내버려졌던 중년남자가 자신은 좋은 일을 했으나 버스의 여성운전사와 승객들에게 배신당한 생각을 하면서 걸어서 산길을 터벅터벅 내려가다가 사고현장을 목격하고, 통제하는 경찰관의 말을 들어보니 버스가 낭떠러지로 굴러 떨어져 승객모두가 사망했다고 한다.

저 멀리 산 밑 골짜기에 자신이 타고 왔던 그 버스가 박혀있고, 여성운전사와 불량배들 그리고 자기를 차 밖으로 내동댕이 쳐버린 승객들까지 한꺼번에 동시에 즉사한 것이다.

이 이야기는 얼마 전에 중국에서 상영한“버스 44”라는 제목의 영화스토리인데,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실화)로 제작되어 중국 국민들에게 많은 반응을 얻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기고자는 이 영화에 견주어 그 여자운전사를 우리나라 구한말 민비나, 무능했던 임금 고종, 아니면 약소국 이었던 대한제국에 비교해보고 싶다.

그때 당시 고종은 미국이 도와줄 것으로 기대 했지만, 미국은 물론 이웃나라인 일본과 청나라, 러시아 등 그 어떤 강대국도 조선을 도와주지 않았고, 모든 주변국들은 명분과 실리만 채우려 했을 뿐이었음을 볼 때 지금 우리나라의 현실과 다를 바 없이 그때 일이 재현되고 있는 것을 느낌으로 알 수가 있다.

미국은 동맹 국가이지만 트럼프 미국대통령의 정책과 정치를 신뢰하기가 어렵고 중국, 일본, 러시아는 구한말과 똑같이 실리추구 정책을 펴며 우리나라를 시험하고, 방관자가 되어 하나같이 위에서 말한 여자운전사가 당하던 추행을 외면했던 승객들과도 같은 행동을 보이고 있다.

대한민국이라는 버스에 타고 있는 5천만 국민들아!

나와 우리는 지금 불량배들의 행패를 방조했던 승객들이 될 것인가? 결코 그래서는 안 될 말이지 않는가?, 제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이 프랑스를 정복할 때, 레지스탕스 활동이 지속되고, 프랑스는 연합군의 승리로 조국을 되찾게 되었는데, 그때 어떤 사람이 독일에 협조했다고 재판을 받게 된다.

재판법정에서 그는 강력하게 무죄를 주장하기를“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나는 무죄다”그러나 재판장은 그에게“조국이 무너지고 네 나라백성이 무참하게 죽어 가는데,”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그것이 죄라고 꾸중했다.

현재의 우리나라는 안으로는 자유민주주의 등불이 점점 꺼져가고, 시장경제가 무너지고 있으며, 나라밖에서는 동해와 영공이 외교적 공황상태가 심각에 이르렀는데, 대한민국의 모든 교회는 목회자와 성도들이 언제까지 방관자로만 앉아 있을 것인가? 라고 질문해본다.

왜 초조해 하면서 바라보고만 있는가? 이때야 말로 함께 모여 밤을 지새우며 나라와 민족 그리고 국가지도자를 위해 기도해야 하지 않겠는가? 지금 일어나지 않으면 과연 어느 때 함께 하며, 어느 때 기도하며, 어느 때 금식하며 울부짖을 것인가?

기독교는 국경은 없지만, 기독교인에게는 국가가 있으며, 따라서 국경도 있는 것이다. 일본이 결국 지난 8월 2일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수출심사우대 국)에서 제외하는 경제보복조치를 취하고 말았다.

미국이 같은 동맹국가로서 강력하게 중재할 줄 알았는데, 제스처로 끝내버린 것 같아. 아베 내각은 더욱더 강도 높게 반한감정을 노출시키면서, 이제는 전쟁할 수도 있는 국가로 개헌하려고 작심하고 있으며, 우리나라 여권에서도 이를 계기로 반일감정을 증폭시켜서 내년 총선에서 개헌선 확보를 선점하려는 것 같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는 일본으로부터 첨단소재를 수입해오지 못하게 방해받고 있어 당장 경제가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형국이 되었고, 이와 같이 극한상황에 이른 국가를 교회가 마냥 지켜 보고만 있어야 되겠는가? 대한민국은 하마터면 지난 6.25때 없어질 뻔했다.

그 때 나라가 없어지지 않는 것은 기적이었는데,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북한 공산군이 38도선에서 중공군을 지원받아 남침을 감행했다.

당시는 탱크부대 350대를 앞세우고 파죽지세로 남하했다. 당시 우리는 탱크 한 대도 없었다. 북한군은 전쟁시작 3일 만인 6월 28일에 수도서울을 점령했다.

그리고 그해 7월 20일 대전, 8월에는 낙동강까지 내려왔다. 부산과 경남 일부와 대구, 경북 일부만 남기고 전국토의 95%가 북한공산군의 수중에 들어갔다.

김일성은 그해 8월 15일 부산까지 점령하고, 광복절을 전국 해방의 날로 선포하고 경축하겠다는 계획과 조선인민 공화국을 세우는 치밀한 전투를 벌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북한군의 행동에 지금까지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다고 보는데, 첫 째 공산군이 서울을 점령한 후 3일간 진격을 멈추고 서울에 머물렀다는 것이다. 만약 그들이 쉬지 않고 내려 왔다면 UN군이 오기도 전에 부산이 무너졌을 것이다.

그들이 왜 3일간이나 서울에 머물렀을까? 그것은 북한이 서울만 점령하면 전국적으로 국민봉기가 일어나서 더 싸우지 않고도 공산화 통일이 된다고 착각했을 것이고, 3일간 기다려도 봉기가 없자 다시 진격을 시작했을 것이라는 추측이 있다.

당시 백선엽 장군도 공산군이 서울에 3일간 지체한 것은 이해가 안 된다고 했다.

두 째는 UN안보리가 UN연합군이 참전을 결의할 때 소련대사 말리크가 불참한 사실이 미스터리 인데, 소련은 거부권행사를 할 수 있음에도, 그 중요한 시간에 불참한 것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가 불참함으로 UN연합군 참전을 9 : 0 으로 가결하게 되었다. 이 미스터리는 결국 대한민국의 구국을 위한 성도들의 기도응답과 위력이었던 것이다.

1948년에 초대국회가 열렸을 때 임시의장 이승만은 국회개원에 앞서“먼저 우리가 일어서서 성심을 다해 하나님께 감사드려야 한다.”며 감리교 목사인 이윤영 의원에게 대표로 기도하게 하였고, 그는 단상에 나와“우주와 만물을 창조하시고 인간의 역사를 섭리하시는 하나님! 이 민족을 돌아보시고, 이 땅에 복을 내리셔서 감사가 넘치는 오늘이 있게 하심을 진심으로 감사하옵나이다. 라고 기도했다.

6.25를 전후하여 남북의 기독교지도자들과 전국의 성도들이 얼마나 눈물로 울부짖으며 기도했던가? 그러므로 지금 이 난국에도 함께 모여 기도하자는 것이다.

우리국민 누구나 청와대와 국회를 바라볼 때 하루가 멀다 하지 않고 당리당략(黨利黨略 )을 위한 이전투구(泥田鬪狗)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국민을 위한 정치는 언제나 이루어질는지 국민의 마음을 혼란시켜 때로는 준동하게 만들고 있다.

사회통합과 남북통일에 대한 거대 담론은 이런 정치적인 모습 앞에 무의미한 이상 이며, 보수와 진보의 분열이 서로를 견제하고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유익한 영향 보다는 사회의 극단적인 분열과 갈등을 초래하고 있어 국민들의 걱정이 태산과 같다.

진보주의자들은 보수주의자들을 그냥 ‘보수’라고 부르지 않고 ‘수구 반동’ ‘꼴통’이라는 비하하는 표현으로 공격하고 있으며, 보수주의자들은 진보주의자들을 ‘급진좌파’ ‘좌빨’ 빨갱이’ ‘사회선동세력’이라는 식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것은 교회에서도 마찬가지다.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을 향한 적대적이고 비난하는 모습은 그리스도인이라고 예외는 아닌 듯하다.

그러나 각자의 정치적인 성향도 있고 배경이 있는데 상대를 향해 나의 생각을 주입하려고 강조하거나 다른 것을 틀린 것으로 매도하는 등, 양 극단으로 자기주장만하면 그것은 은혜가 아닌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말씀으로 비추어볼 때 사람은 완전한 100% 보수적인 사람과 완전한 100% 진보적인 사람이 있을 수가 없다.

 

동성애와 낙태 반대 등의 우리의 전통 가치를 지키기 위해 외치는 보수주의자가 전쟁에 반대한다는 반전운동을 하는 경우를 보지 못했다. 반대로 그토록 난민문제와 반전운동 등의 인권을 중시하는 진보주의자들이 지척에 있는 북한의 인권탄압현실에 대해 피맺힌 경고를 보내고 무수하게 짓밟히고 있는 북한 동포들이나 탈북자들의 안타까운 생활고의 좌절을 보고도 동정하는 목소리를 들어본 기억이 없다.

차제에 우리 기독교인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쉬운 길은 양비론(兩非論)일 것이다. ‘보수냐?, 진보냐?’에 대한 해묵은 논쟁에 대한 피로감으로 때로는 정치에 대한 본능적인 혐오로 인해 이쪽과 저쪽이 다 싫고 독야청청(獨也靑靑)한 기독교인으로 사는 것이 최상의 길인 양 쉬운 길을 선택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그건 아니다.

그러니까 보수냐 진보냐 하는 논쟁에서 우리 기독교인의 선택은 흑백논리에 따라 이것이다. 저것이다. 가 아니라 민족의 평화통일과 세계 제사장 국가로서 선교를 완성하기 위해 상생과 번영 그리고 선교라는 비전을 품고“하나님의 나라”의 가치를 쫓아가야 한다.

기도하는 자나 참여하는 자들에게 있어서 본질은 이것이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며 살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주님께 더 큰 기쁨이 될까?” 이 질문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설 때만이 우리가 진보냐 보수냐 하는 흑백논리로부터 해방되어 나라와 민족을 위해 떳떳하게 기도할 수 있을 것이다.

셋 째 의인은 반드시 보호를 받아야하며, 자손은 하나님께서 보호 하신다는 사실이다.

비록 여자운전사가 연약한 지체로서 능욕을 당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 가슴 속에 살아 넘치는 한사람의 정의감은 불량배와 무책임하고 방관했던 비겁한 승객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된 것이다.

그 여자운전사는 마치 신실한 요셉, 눈물의 선지자 예레미야, 정직한 다윗 같이 의롭지만 핍박 받은 남자를 살아남게 하려고 기발한 언행으로 그를 그 심판받을 무리로부터 구출시켰던 것을 알 수 있다.

여자운전사는 두 눈이 뽑히고 망가질 대로 망가진 삼손이 블레셋 방백들과 정치 종교 지도자들을 한꺼번에 심판하고 죽은 것처럼 하나님을 대신하여 그들을 심판했던 것이다.

오늘날 악한 자들과 비겁자 방관자들로 부터 의인과 그 후손들이 핍박과 고난을 당한다 해도 몸통이 잘린 상수리나무가 그 그루터기에서 다시 새싹을 내듯 의인과 그 신앙은 인류사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그들과 후손들은 길이 보존되고 형통해야 하는 것인데, “시편 37 : 39 - 40절에“의인들의 구원은 여호와로 부터 오나니 그는 환난 때에 그들의 요새이시로다. 여호와께서 그들을 도와 건지시되 악인들에게서 건져 구원하심은 그들이 그를 의지한 까닭이로다.”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의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 (시37 : 25)

결론적으로 지금 이 때야 말로 우리 기독교는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우리 민족의 운명과 미래가 달려 있음을 고백하고, 함께 모여 목 놓아 울며 국가와 민족 그리고 자손을 위해 그리고 이 나라 지도자들을 바르게 세워달라고 부르짖어야 한다.

의인이 기도하지 않는 것은 악마를 승리하도록 방관하는 큰 죄악중의 죄악이다. 국가가 무너지면 우리의 재산과 신앙 그리고 교회도 없다. 하나님께서 희망의 문을 닫아버리기 전에 우리가 두 손 들고 기도해야 한다.

개인이 두 손을 들고 기도하면 그 사람이 살고, 어머니가 두 손을 들고 기도하면 자식들이 살고, 가장이 두 손 을 들고 기도하면 가정이 살고, 성도가 두 손을 들고 기도하면 나라가 살고 그리고 백성이 기도하면 대한민국은 영원히 번영할 것이다. 우리 모두 나라위해 기도하자!

 

 

기독교헤럴드 chd623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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