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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영 사모편지(연재)

기사승인 [453호] 2019.08.14  15:3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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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과 사의 장렬한 파노라마

                       위영 작가

혼자만의 약속이긴 하지만 그대에게 편지 쓰기로 마음먹은 것이 언제던가, 보내지 않을 편지는 내밀하고 그래서 더욱 진실할 수 있다. 여름이 익어갈 즈음  어느 순간 그대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오늘 작달비가 느닷없이 쏟아지고 난 후, 뜨거운 공기가 조금 식었다 싶을 때 문득 그대 소리가 귀에 잡혀왔다. 그대의 귀환이 시작된 것이다.  소리를 눈으로 볼 수 있다면 아마도 그대의 소리는 여름 나무 이파리 못지않을 것이다. 예전에는 낮에만 울면서 짝을 찾았는데 이제는 낮밤이 없는 시절이 되어버렸다. 환한 전깃불 탓이다. 어쩌면 사람도 낮밤이 없이 살아가니 그대들도 그리 되었을 것이다.
 며칠 전 활짝 핀 나리꽃을 찍다가 그대를 보았다. 우화해버린 굼벵이의 껍질, 그대의 집이 얌전히도 꽃 이파리에 매달려 있었다. 그 순간 생각했다. 그대의 생애가 겨우 한 달 정도라고  쉽게 말할 수는 없겠구나, 단지 사람의 눈에 띄지 않는다는 것만으로 굼벵이의 삶을 삶이 아니라고 누가 말할 수 있다는 말인가. 오히려 땅속에서 살아가는 삶이 그대들에겐 참 의미의 평화로운 삶일지도 모른다. 길게는 17년을 땅속에 사는 매미도 있다고 한다. 한 달을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대들은 땅속에서 애벌레인 채로 3년 5년 7년 15년 17년을 열심히 살다가 죽기 위해서 세상에 나오는 것이다. 수매미는 아주 열심히 목이 터져라 노래를 불러 짝을 찾는다. 그리고 자신의 씨앗을 뿌린 뒤 죽는다. 암매미는 조금 더 살다가 알을 낳은 뒤 역시 죽는다. 생명을 이어받은 알은 애벌레가 되어 땅속으로 들어간다.
 ‘존재함’만으로 눈물 나는 사막의 식물들도 있다. 육지 전체의 넓이 중 삼분의 일이 사막이라고 한다. 셈에 어두운 추론일지도 모르지만 인생의 넓이 중 적어도 삼분의 일 이상은 사막이 아닐까 연상을 해본다. 물론 이것은 단순히 소유나 물질에 대한 이야기만은 아니다. 우주 비행사들이 귀환하는 중 저궤도 에서 지구를 바라볼 때 가장 인상적인 이미지는 사람의 흔적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사막이라고 한다. 내가 본 유일한 사막은 모하비이다. 오!그랑데(?)를 가기 위한 관문, 버스를 타고 가는데 돌과 자갈들이 가득한 땅에 허리춤에도 오지 않을 것 같은 관목들만 드문드문 솟아나 있는 사막. 가도 가도 그 길은 도대체 끝이 없었다. 차츰 시간이 흐를수록 그 단순한 풍경이 주는 말할 수 없는 장대함이 내 속에서 미묘한 에너지를 만들어가던 기억이 선연하다.
 사막의 식물들은 사막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피눈물 나는 노력을 한다. 몸속에 수분을 일시에 많이 모아들이거나 저장된 수분을 앗기지 않게 하기 위하여 바늘처럼 뾰족한 형태로 만들기, 가죽처럼 질겨지기, 숨구멍의 수를 줄여 깊은 땅속으로 숨기, 두터운 털로 스스로를 보호하기, 모래언덕에 사는 갈대는 그 뿌리가 수 미터에 달하기도 하며 더불어 수많은 잔뿌리는 땅속을 샅샅이 탐색하는 면밀한 현미경이다. 사하라 사막에 살았던 아카시 나무가 죽은 후 살펴보니 그 뿌리가 35미터나 되었다는 사실은 정말 눈물겹지 않은가,
사우디아라비아의 사막지대에 사는 예리고의 장미는 내내 작은 뭉치처럼 미이라 상태로 말려 있다가 조그마한 습기라도 감지하게 되면 순식간에 넓게 잎을 펴서 생명을 만끽한다. 아프리카 사막에는 노미옥속이란 식물이 있는데 이파리가 반질거리는 석회석과 같아 냇가에서 주운 조약돌과 구분을 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러나 우기 철이 되면 그 조약돌에서 주황색의 커다란 꽃이 피어난다고 한다.  수백 년 비가 잘 내리지 않는 칠레의 아타카마 사막에는 뿌리 없는 식물도 있다고 한다. 공 모양이 되어 바람 부는 대로 여기저기를 굴러다니는 식물, 이런 지극한 모습으로 존재하는 생명들에게 어느 순간 비가 조금 내리면 그 기묘한 생명체들이 일시에 싹을 틔운다. 가지고 있는 모든 에너지를 모아서 꽃으로 피어난다. 그리고 습기가 있는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엄청난 양의 씨를 만들어 낸 다음 다시 죽음과도 같은 휴면상태로 들어간다. 그대와 다를 바 없다. 그대는 세상으로 나오면서 수많은 천적들에게 휩싸인다. 그대들의 무기는 바로 그대들 자신이라고 한다. 수많은 매미들이 잡혀먹어도 살아있는 다른 매미들이 역사를 이어간다.
 어쩌면 생과 사의 구분법은 思考할 수 있는 인간이란 존재의 치명적인 약점인지도 모른다.  그대를 비롯한 수많은 생명들의 장렬한 파노라마를 생각하며 우리 역시 그대나 사막의 식물처럼 살아가고 있는 것 아닌가, 아니 그대의 생명이 땅속에 있듯이 우리의 생명은 저 하늘에 있어 그대들처럼 지금 죽기 위해 사는 것 아닌가! 炎夏에 그대의 안부를 묻는다.    

기독교헤럴드 chd6235@naver.com

<저작권자 © 기독교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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