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쓴물단물(34)

기사승인 [451호] 2019.07.17  15:5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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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의 일본은 진정 위기임에 틀림없다. 과거 일본이 무서운 나라였던 것은 일본이 잘 살아서가 아니다. 일본보다 잘 사는 나라가 많다. 일본이 똑똑해서도 아니다. 똑똑하기로는 그리스나 이태리, 인도, 이란, 이스라엘을 따라갈 나라가 없다. 인류문명의 산실인 나라들의 정신세계는 우리가 상상한 것보다 훨씬 깊다. 그럼 왜 일본이 무섭나? 일본의 기회를 살리는 능력, 시대를 읽는 능력이 탁월하기 때문이다.
일본은 1400년대 중후반부터 서양과 문물교류를 단행했다. 19세기에도 역시 후쿠자와 유키치를 필두로 명치유신을 단행하였다. 그들이 한 일은 정신적 힘과 문화적 깊이를 갖춘 통일된 나라를 세우는 것이었다. 오늘날 우리가 쓰는 철학, 정치, 사상의 용어를 15세기 중반부터 교류한 서구사상과의 대화로 명치유신 시대에 집대성하여 동양의 주요 고전을 서양적 개념으로, 서양의 중요개념을 동양적 개념으로 정리하였다. 이것이 일본의 힘이다.
지금 힘자랑하는 일본총리 아베 신조에게서는 이런 일본의 힘을 전혀 볼 수 없다. 아베에게서 볼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오직 정치적, 군사적, 경제적 힘뿐이다. 아베가 꿈꾸는 새로운 일본은 2차 대전 패전의식에서 벗어나 전쟁을 할 수 있는 강한 나라이다.
그러나 아베가 간과한 것이 있다. 일본이 2차 세계대전에서 진 것은 군사력이 약해서가 아니라 아시아를 경영할 수 있는 문화, 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군사력, 정치력, 경제력만 가지고는 강한 나라를 만들 수 없음을 이미 우리조상들은 3.1독립선언서, 안중근 의사의 동양평화론에서 천명하고 있다.
일본이 우리나라에 대해서 단행한 경제 조치나 백색국가 그룹 제외 등은 일본의 강함보다 일본의 사상적 빈곤을 입증하는 것이다. 일본의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 아베는 정녕 100년전 이토를 넘어설 수 있는 비전이 없단 말인가?
일본의 무약함보다 더 위험한 것은 우리들도 힘 대 힘, 또는 민족적 감정이나 정치적으로 대응하려는 근대성이다. 근대성은 기술과 외교, 정치와 예술로 욕망과 폭력성을 감추려는 허위로 대변된다. 힘의 논리로 역사의 잘못을 바로 잡는 것은 불가능하다. 바이체커 수상이 희생자의 무덤에 무릎을 꿇고 사과한 것은 독일이 힘이 없어서가 아니라, 인류 시원의 본성인 사랑, 평화, 정의, 연대, 공존, 비폭력의 힘에 굴복했기 때문이다. 힘으로 한국을 제압하려는 아베나, 힘을 키워서 일본에 본떼를 보여주자는 국내 여론은 시대정신에 한참 못미치는 근대적 허위이다.
일본을 이기고 싶으면 일본보다 더 강한 문화적 힘과 인류 공영의 문명사적 정신을 전파해야 한다. 일본이 한국을 굴복시키고 싶다면 한국보다 위대한 일본정신을 마련해서 세계에서 인정을 받아야 한다. 3.1 민족 대표 중 16명을 배출한 개신교회는 더욱 더 예수 그리스도가 마련한 하나님 나라의 사랑과 정의와 평화의 가치를 현실적으로 체계화하여, 두 나라의 상호공존과 세계번영에 이바지해야 할 책임이 있다. 이때야말로 교회가 할 일은 명확하다. 미래비전을 제시하므로 대립 속에서도 상호발전을 도모하고, 미래적 희망으로 갈등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화해의 사신’ 역할을 해야 한다.

기독교헤럴드 chd6235@naver.com

<저작권자 © 기독교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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